본문 바로가기
유머

스토리텔링

by 바다기획 2016. 2. 25.
찬스2

회식은 고객사가 있는  광화문 근처 해물탕집으로 정해졌다. 고객사 직원들과  민지네 회사 주요 담당자들과 만남이여서 민지는 아무생각없이 짐을 챙기고 퇴근하려고 했다. 그런데 김팀장이  나가려는 민지를 제지하고 참석하라고 지시했다.

정대리 어디가? 회식가야지.  따라와.
...

민지는 좀 의아했지만 김팀장 전에 없이 굳은 얼굴이어서 잠자코 회식에 참여했다. 회식은 화기애애하게  흘러갔다. 민지도 사고가 잘 해결되어 긴장이 풀리면서 술 맛이 좋아  평소보다 많이 마셨다. 회식 분위기가 무르익었다고 느껴질  때쯤 갑자기 고성이 터졌다. 모두 고성이 터진 쪽으로  시선이 모아졌다. 고객사 간부가 있는 방향이었다.

취했어? 취했어면 곱게 취해 어디서 주정이야!

그 간부의 말을 받아 누군가 큰소리 쳤다.

어라 곧 지 간부될 사람한테 말하는 꼬락서니 좀 보게 죽고싶어?

놀랍게도 김팀장의 목소리였다. 민지는 자신의 귀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순둥이에 예스맨의 원형같은 사람이었다. 주사가 있지도 않았다. 그런데 왜? 김팀장의 고성은 계속 이어졌다.

너 임마 이제 죽었어.

김팀장은 누군가 죽이지 않으면 안될 것만 같았다. 내가 왜  이런 대접을 받아야 하는지 아무리 생각해도 모르겠다며 지금까지 참고 산 것이 억울해 김팀장은 발광했다. 만약에 웃으며 회사운영상에 꼭 그렇지만도 않아 라고 고객사 부장이 자신의  부하 직원이 김팀장을 두고 성격이 좋으시군요 라고 한 말에 대꾸만하지 않았어도 김팀장은 이렇게 날뛰지 않았을 것이었다.

좃같네 성격 좋으면 회사 운영에 걸림돌이 된답니까?

김팀장은 늘 자신이 무능하다는 강박관념에 짓눌려 살았다. 그래서 주변사람들에게 해가 되지나 않는지 전전긍긍했다. 밝은 웃음과 느그러운 마음가짐을 사람이 갖출 본질임을 굳게 믿고 아니 최면걸며 살았다. 이런 걸 인간의 본질이라고 순진하게 신념인양 뜨겁게 품고 산 것이 쪽팔렸다. 그렇게 기죽어 살다가 결국 그렇게 기 한번 못피고 죽을 것이라고 두려워 하며 치사하고 자신없는 자신의 모습에 치를 떨지만 별 수 없이 고개쳐박고 어둠속에 기어들어선 꺽꺽 울며 지푸라기 잡듯 도덕적 삶이란 빈 껍데기에 기댈 뿐인 자신의 운명에 분노를 느꼈다. 김팀장은 자신과 자신을 둘러싼 모든것에 저항하기 시작했다.

니네랑 우리랑 합친다고,  알아! 울 사장이랑 난  친구거든 네가 니들 밑에 깔리겠니! 기분 더럽지 응? 그런데 어쩌겠냐 세상이 이런걸 

김팀장은 처음 회사를 만들고 첫 광고를 받아 사장이랑 술마셨던 날이 기억났다. 그때의 사장은 회사가 커지면서 증발해버렸다. 뚝배기같은 머슴은 머리기름 바르고 댄디한 정장을 걸친 하이그로스 가구에 어울리는 주식전문가가 되었다. 사장은 이제 경영자이길 원하고 인재를 고르고 적소에 배치하고 정치인을 만나고 강연에 나갔다. 김팀장과는 이제 더이상 회사 운영에 대해서 공식적로나 사적으로 의논하지 않았다. 친구로서 서로의 가족들 안부정도 물을 뿐이었다. 이제 나갈 때임을 김팀장은 느끼기 시작했다. 박수칠 때 떠나야지 라며 무의식중에 중얼거리곤 했다.

고객사 부장이 서둘러 김팀장을 달래려고 소매를 잡고 실수했다고 웃어며 잔을 건네며 술을 채우려고 했다. 그러나 김팀장은 잔을 받기는커녕 손등으로 쳐냈다. 잔은 보기좋게 바닥에 떨어지고 술은 상위로 쏟아졌다.

한 손으로 술을 따라? 어디서 배운 버르장머리야 너희 회사는 이렇게 상사를 대하냐? 군대 어디 나왔어?

고객사 부장도 그만 눈이 뒤집어졌다.

이새끼가 보자보자 하니까 눈깔에 뵈는게 없나?

김팀장은 갑자기 개줄이 풀리며 도독을 향해 손살같이 튀어나가는 불독의 장면이 떠올려지며 가슴이 훗끈 달아올라 불독이 빙의한듯 입속이 침이 고여지며 식욕처럼 전의가 살갗 구서구석 꿈틀됨과 동시에 고객사 간부의 멱살을 헹주쥐어짜듯 비틀었다.

너 임마 오늘 죽었어


반찬접시가 튀고 찌개가 엎질러지고 고객사 간부는 숨이 턱 막혀 켁켁거리고 고객사 직원 중 간부 옆에 있던 젊은 부하직원도 용수철처럼 튀어오르며  김팀장의 멱살을 잡자 상은 그만 뒤집어지고 말았다. 주인이 튀어오고 여직원들은 비명을 지르고 국물이 튀어간 다른 테이블 손님들도 육두문자를 쏱으며 자리를 박차며 일어나 옷을 털고 난리법석 난장판이 되었다.

민지는 김팀장의 얼굴이 붉게 물들어가는 것을 보고 있었다. 처음엔 누렇게 황달끼가 비추다가 저녁놀처럼 붉으지다가 종내에 대추빛이 되어갔다. 민지는 국자를 집어들고 젊은 부하직원에게 달려갔다. 국자를 뒤로 활을 뒷당기듯 제쳐 젓먹든 힘까지 쏫아 힘꺼 휘둘렀다.



 
씨발 뭐야 라며 젊은 부하가 김팀장의 멱살을 풀고 머리를 감싸며 뒤돌아봤다. 민지를 발견하고는 민지를 향해 팔을 뻣어 민지의 머리채를 낚아챘다. 민지는 그의 우악스런 팔에 끌려 허리가 꺽어졌다. 김팀장도 고객사 부장의 멱살을 풀고 젊은 그에게 달려가 이종격투기의 키로틴기술처럼 목을 팔로 감아 조였다. 젊은 부하는 민지의 머리채를 쥔채로 개가 물을 털어내듯이 몸을 흔들어 김팀장을 털어내려고 발부둥쳤다. 음식점 주인도 더이상 지켜볼 수가 없어 몸을 날렸다.

씨발 그만해

소동은 경찰이 출동하고나서야 진정되었다. 지구대가 마침 가까이에 있어서 금방 들이닥쳤고 경찰이 김팀장을 바닥에 눕혀 수갑을 채워버리자 상황은 종료되었다.

차가운 수갑이 손목에 닿자 김팀장은 더욱 갑갑증이 느껴졌다. 온힘을 손에 모아 수갑사슬을 끊어려고 손을 비틀고 벌리려고 했지만 꿈쩍도 하지않자 욕을 쏟아냈다. 그건 그가 화가나면 화내지 못해 쌓여 퇴적된 울분이 덩어리가 되어 울컥울컥 개어져나오듯 걸쭉하고 처절하게 튀어나와 귀를  후벼 막았다. 정말 짐승소리처럼 소름이 돋았다. 악다구니하던 김팀장은 그렇게 오래가진 못했다.

그날 회식은 한동안 회사내에서 커다란 이슈가 되었다. 순둥이 김팀장의 주사는 단연 충격이었다. 그리고 정민지대리의 국자 스매싱은 베어울프 버금가는 영웅담처럼 들불처럼 삽시간에 퍼져 두사람 이상만 모이면 무용담 얘기가 꽃피워졌다. 그러나 가장 큰 충격은 합병소식이었다. 진위도 물론이고 합병 후 대규모 해고도 있을거라는 소문과 함께 근거없는 살생부가 회사 업무가 마비될 지경이었다. 갖가지 억측들이 난문하는 가운데 김팀장의 퇴사 소식이 터졌다. 예측되었던 일이었지만 어떻게 그가 잘리는지 그 방법과 절차에 대해 모두의 시선이 쏠렸다. 지난번 회식사태에 대한 징계는 없었고 희망퇴직으로 처리되었다. 모두들 창립멤머로서 굳은일 마다하지않고 회사일이라면 몸사리지 않았던  김팀장에게 정상참작된 것이라고 생각했다. 김팀장이  부서를 돌며 작별의 인사를 나누자 마치 비가 내리듯 합병소문과 감원에 대한 소문들이 불 꺼지듯 잣아들었다. 김팀장은 별도의 송별회식없이 간단하게 자기 팀원들과 점심을 먹는 것으로 마직막 날을 조용히 마무리 지었다. 합병 얘기는 그가 그만 두자 흐지부지 사라졌다.

민지는 새 팀장이 회의실에서 기다린다는 얘길 듣고 회의실로 갔다. 회의실에 가장 늦게 도착한 그녀는 문을 살며시 열고 회의실로 들어갔다. 훤칠한 키의 낯선 남자가 문이 열리자 고개를 돌려 민지늘 바라봤다. 그와 얼굴을 마주친 그녀는 하마터면 비명을 지를 뻔했다. 아까 출근길 도로 위  차에서 자신을 향해 끈적한 미소를 날렸던 변태였다. 그도 살짝 놀라는듯  눈빛에서 이채를 띄더니 이내 정상적인 눈길로 그녀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처음뵙... 아니 또 만나 반갑습니다. 멈칫멈칫하면 큰일납니다.  차선 변경 땐 찬스가 나면 과감하게 들어가야 됩니다. 우물쭈물하다가는 큰일납니다. 따    르     릉, 하하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아? 아! 네... 죄송합니다. 안녕하세요.

유강희라고 합니다. 황용대리님.

네?  황...용?

하하 죄송합니다. 정민지대리님. 지난 회식 때 국자로 김팀장님을 보호한 얘길 듣고 정대리님이 제가 좋아하는 무협지의 여걸 황용같다는 생각에 그만 황용대리님이라고 했습니다. 기분 상했다면 사과드립니다.

아...네 괜찮습니다. 정민지대리입니다. 잘부탁드립니다.
반응형

'유머' 카테고리의 다른 글

붉은노을  (0) 2016.06.24
스토리텔링  (0) 2016.05.14
스토리텔링   (0) 2016.02.20
스토리텔링  (0) 2016.02.13
스토리텔링  (0) 2016.02.06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