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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머

스토리텔링

by 바다기획 2016. 2. 6.
봄밤

민지가 울기시작했다. 가늘게 어깨가 흔들리고 입술이 구겨지면서 꺽꺽 마른 흐느낌을 풀어냈다. 성호는 어어 하면서 방금까지 웃다가 갑자기 우는 민지의 갑작스런 변화에 영문을 몰라 말을 잠시 잊었다.

왜그래? 어? 왜울고 지랄이야?
그냥
뭐 그냥?

아놔, 참 그만해라


민지는 곧 울음을 멈추고 소줄 한잔 탁 들이켰다. 그리고는 언제 그랬냐며 씨익 웃음을 지어 보이고 잔 비었음을 잔 들어 머리 위에 뒤집어 보여쥤다.

금방 왜 운거야
그냥
혹시 상욱이 때문이야
...
상욱이랑 싸웠어
아냐
싸웠구만
...

상욱이가 민지를 소개해 달라고 부탁받은 성호는 여느 때와 마친가지로 흔쾌히 들어줬다. 민지도 귀찮다고 하면서 친구 부탁을 모른체 하냐며 상욱이와의 약속시간을 챙겼다. 민지는 상욱이랑 만나고 나서 별다른 얘기를 하지 않았다. 보통 때면 어떻게 친구에게 그런 폭탄을 소개 했냐, 넌 눈을 폼으로 달고 다니냐 온갓 푸념을 늘어놓았던 것과는 사뭇 달랐다. 성호도 상욱이의 밝고 구김없는 성격에 믿음이 가 상욱이와 민지가 잘되어도 안심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막상 민지가 상욱이를 맘에 두자 성호는 약간 허전함을 느꼈고 가슴 한켠에 작은 빈 공간이 생겨났다. 그러나 크게 맘에 두진 않았다.

상욱이 참 괜찮치?
뭐 그런 것도 같고
뭐가 그런 것도 같아? 진짜 너 사람 볼줄 모른다. 여자들은 남자보는 눈이 왜 그 모양이냐.

성호는 상욱이 얘기가 나오면 상욱이를 두둔했다. 성호의 그런 반응에 민지는 격하게 수긍하거나 하지는 않았다. 늘 다른 얘기로 넘어가거나 미소만 지을 뿐이었다. 성호는 그런 민지를 보면서 가슴속에 빈 자리가 점점 커지는 것을 불안하게 지켜봐야만 했다.

2학년이 시작되고 캠퍼스에 봄기운이 무르익던 날 민지로 부터 전화가 왔다. 술이나 한 잔하자는 전화였다. 한강에 가자는 민지를 따라서 마포역에서 내려 좀 조용하게 보이는 술집에 들어갔다. 홍대 앞이 어떨까 하자 민지가 그냥 마포역으로 가자고 했기 때문이다. 한강도 가깝고 하면서 마포를 택한 이유를 민지는 설명했다.

오뎅탕을 시키고 소주를 시켰다. 오뎅국물을 연거푸 떠고 시원하다고 연신 오뎅국물 칭찬을 하더니 최근에 영화 본 얘길 풀어놓았다. 그렇게 서로 영화 관련얘기를 한참 하다가 영화 러브스토리 까지 넘어갔다. 민지는 겨울이 기다려지는 이유 중에 러브스토리가 있다고 했다. 하얀 눈 위에 넘어지는 두 주인공의 모습이 어찌 멋져 보이는지 그래서 겨울이 되면 설레여지게 된다고 얘기했다. 그리고 죽어가는 제니퍼는 불행하지 않다고 하면서 민지는 독백처럼 다음과 같이 말했다.

왜 불행하지 않을까? 그녀는 헤어지지 않았기 때문이지. 눈을 감을 때까지 올리버가 그녀의 곁을 지켜주었기 때문이야. 물론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다고 하지. 낫다고 하는 주장에는 헤어지지 않은 경우에만 해당된다고 봐. 개똥밭에 굴러도 헤어지지 않는 경우에는 이승이 낫다 라고 해야지. 제니퍼도 헤어진 것이 아니냐 라고 반문할 수도 있어. 물론 그래 헤어졌다라고 하는 의미에는 서로 더 이상 보지 못한다라는 의미가 있지. 하지만 누구나 죽기 마련이야. 죽음으로 인해 헤어졌다는 말은 무척 더물게 사용해. 물리적인 이유랄까.

내가 말하는 헤어짐은 이런 거야. 둘 중에 한 사람이 만나주지 않는 것이지. 제니퍼는 그런 의미에서 헤어진 게 아니야.  이 영화는 전체적으로 매우 함축적이고 절제되어 있어. 매우 단조로운 플롯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사람들로 하여금 많은 공감대를 공유하도록 하는 힘이 있어. 치밀한 수학 방적식 같아. 

민지의 독백은 영화의 평으로 끝을 맺었다. 성호는 독백이 끝나자 질문을 던졌다.

너 상욱이랑 헤어졌지?

민지는 성호의 질문에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툭 하고 별것 아닌듯 답했다.

아니 상욱이랑 만나고 헤어지는 그런 사이였던가? 하하하 아니쟎아

민지는 지난 학기 성적이랑 이번 학기 수강신청 얘기로 화제를 돌렸다. 둘은 10시쯤에 술집을 나왔다. 한강에 나가 보자고 민지가 의견을 내놓았기 때문이다. 마포로 오자고 한 이유를 상기시키며 말이다.

문을 열고 먼저 밖으로 나간 성호가 말했다.

어 비오네
그러게
봄비구나, 비오는데 갈거야?
많이 오지도 않네 뭐

어두운 강물 위로 마포대교 가로등 불빛이 봄비에 젖어 떨어지고 있었다. 개나리가 여기 저기 꽃망울을 터뜨려 노란빛을 드문드문 강둑에 칠을 하고 있었다. 

봄비가 그치면 개나리, 벚꽃이 만개하겠지. 
민지가 얘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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